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문단 편집) === 기밀 문서 === [[도쿄신문]]과 [[주니치신문]]이 미국의 원폭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 공문서 중 당시 기밀 자료였던 '글로브스 문서'를 분석한 결과 '''3번째 원폭 투하 계획'''을 확인했다고 2018년 8월 10일자로 보도했다.[* 실제로 [[몰락 작전]]이 시행되었다면 첫 상륙인 1945년 11월 1일에 앞서 최대 7발의 대규모 핵폭격이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3번째 원자폭탄 투하 계획은 곧 중단되었는데, 당시 미국 정부 관계자의 일기 등에 따르면 트루먼 대통령이 원폭 투하 후 [[히로시마]]의 참상을 담은 사진을 본 뒤에 더 이상의 원자폭탄 투하를 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3번째 원폭 투하 계획'은 곧바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5&aid=0000665969|"美, 히로시마·나가사키 이어 3번째 원폭 日 투하 계획했었다."]] 그리고 그 3번째 투하 장소는 고쿠라와 니가타 중 하나였다. 만일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의 핵 투하 의지가 변함 없었더라면 저 두 도시 중 한 곳은 역시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쿠라]]는 원폭 투하 위험을 3번이나 피한 운 좋은 도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고쿠라(現 기타큐슈) 주민들은 고쿠라가 운 좋게 원폭을 맞지 않았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고 슬쩍 넘어가는 편이다. 고쿠라 대신 원폭을 얻어맞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에 대한 [[고인드립]]이 될 수 있기 때문.] 해당 도시는 주변에 바다와 인접해 있는데 만일 이때 정말로 떨어졌다면 태평양 쪽에 피해가 미쳤긴 했겠지만 훗날 캐슬 브라보 실험에서 증명되었듯 수중 폭발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에 해수가 방사능으로 오염되긴 해도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레슬리 그로브스]] 미 육군 공병 중장은 1945년 8월 10일에 8월 15일 이후에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을 경우, 8월 17일 또는 19일에 1발, 9월과 10월에 각각 1발 등 이 외에 10발을 더 투하해 총 15발을 투하하자고 [[조지 마셜]] 미군 원수에게 제안했다. 물론 조지 마셜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이 떨어져야 원자폭탄을 추가로 투하할 수 있다는 답변을 내렸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로 리틀 보이는 [[전투력 측정기|모든 핵무기의 위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새로 나온 핵폭탄의 위력을 언급할 때 '히로시마의 몇 배다'라는 식으로 언급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히로시마에 떨어진 놈은 16킬로톤(kt). TNT 16,000톤을 동시에 터뜨려야 발생하는 엄청난 파괴력이다. 자세한 것은 [[원자폭탄/위력]] 항목으로. 핵폭탄 실험이나 [[화산]] 폭발, [[지진]] 등 대규모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인공 또는 자연적 사건에 비공식적이지만 아예 몇 히로시마라는 단위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통상 TNT 15 킬로톤(kt), 63 테라줄(TJ)을 기준으로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